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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천년전 아레나에서 150년전 감동을.. 라 트라비아타

처음에.. 이번 여행지를 이탈리아로 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파트는,
남부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 풍경,
그리고 테라스에서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내 모습을 기대했지..

Positano bites deep.

존 스타인벡이 여행에세이에서..
포지타노는 깊게 문다며,
깊게 물려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나와서도 그걸 잊지 못한다는 그곳, 포지타노에 가서 지내보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탈리아 여행을 픽스해놓고,
게으르게 남부 이탈리아 숙소를 찾아보다보니
이미 성수기가 시작된 그 곳엔 도저히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에어비앤비, 호텔 할 것없이..
조금 남은 방이라고는
여관 수준에 바다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2-300유로
좀 좋다 싶은 곳은 2000-3000유로에 달했다.
ㅠㅠ
휴직하는 동안 절반은 해외에 나와있을 예정인 나는 이렇게 많은 돈을 한 번에 쓸 수는 없었다고..

진심 슬픈 마음으로 대체할만한 다른 곳들을 찾아보는데,
이 큰 실망을 덮어줄만한 곳이 없었거든

그러다 드디어 마음에 확 꽂힌 것이 바로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었다.
베로나에 기원 1세기에 지어진 경기장 아레나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여름 오페라 페스티벌과 내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감동!
어릴적 야니 아크로폴리스 공연 시디를 들으며 나도 그 곳에 있었으면 했던 그 로망말이다..
이룰 수 있겠어

몇가지 공연이 있었는데
일정과 딱 맞는게 ‘라 트라비아타’ 였다.
La Traviata
고전중의 고전 러브스토리 아닌가
사랑에 목마른 나에게
포지타노를 잊을 만한 일정이 될 것이다.

이로하여 이번 이탈리아 일정은 로마에서 중부 이탈리아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운전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베로나.




베로나 호텔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시간 맞춰 나왔는데..
열심히 구글과 주차앱 검색, 공포의 ztl까지 모든 확인을 마쳤는데..
어김없이 안나와야할 곳에서 나오는 ztl..
접근할 수 없는 주차장
이래저래 좀 먼 곳에 빈 주차장을 찾아 주차하고 나오니 시간이 빠듯하다.
아무래도 오페라다보니 야외이긴하지만 시작한 후에는 입장이 제한될 것만 같았다.
다급히 걷다 뛰다..




드디어 아레나에 도착
전투적인 내 모습 ㅋㅋ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한 자리를 찾아가느라 손과 발이 바쁘다.




입구를 찾은 후
급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기념 사진 한장






드디어 도착했다.
이 넓은 경기장이 만석이다.
하늘엔 노을이 환상적이고,
사람들은 오페라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다.
우린 2000년전 그대로 그냥 돌 위에 앉아 오페라를 관람 했다.
낮의 열기로 돌은 아주 뜨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초반에 그 유명한 축배의 노래 Brindisi로 흥을 돋군다.
정말 몇 백년전으로 돌아가서 무도회에 참석한것 같았다.

라 트라비아타의 옛날 사랑이야기 - 목숨 건 사랑 이야기가 새삼 좋았다.

고전에선 사랑에 목숨건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행한 사랑 이야기도 이 도시 베로나의 것이다.
요즘엔 그런 이야기들이 인기가 없다.
요즘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사랑에 지위와 명예를 다 내던지고 목숨까지 버리는 일은 없다.
왜냐면 그런 사랑은 오늘날에는 없기 때문에..

요즘엔 그렇다.
오늘 내가 먼저 선톡 세번 보냈는데 남자는 한번 밖에 보내지 않았다면, 이 사랑이 진짜인지 의심한다.
지난주도 내가 저녁을 샀고 이번주도 내가 저녁을 샀는데 오늘 커피만 결제하는 여자를 보면, 이 사랑을 계속해야하는지 고민한다.

요즘엔 내 마음도 그리고 내가 가진 무엇도 사랑때문에 포기하거나 손해보고 싶어하지는 않는거 같다.
내 모든걸 다 내던지기 보다는 공평하게 서로 마음 안상하게 적절히 마음을 주고 받는게 중요해진거다.
그래서 사랑에 목숨까지 거는 이야기를 보면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애틋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단 말이야..

그 옛날 젊은 베르테르는 심지어 해보지도 못한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렸다.
물론 젊었으니까 그랬겠지
10살만 더 먹었으면 에잇 관둬라 하고 훌훌 털어버렸을지도..
그래도 그 시절엔 그 이야기에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었다. 베르테르 효과로 자살이 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이 소설은 특히 인기가 없다.
공감이 안되는거지..

아무튼 이런 각박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고전 감성에 빠질 수 있어 좋았다.

프리마돈나 오페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처음엔 사교계의 최고 인기녀이자 나중에 병들어 죽어야하는 여주인공이 너무 튼튼해보여서 좀 그랬는데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4막 공연에
음향 시설도 없이 생목으로 거의 모든 파트를 혼자 소화하는걸 보니 존경심이 들었다.

그에 비해 남주는 목소리도 작고..
원래 좀 찌질한 그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함인가

비올레타는 모든 인기와 부와 명예를 가진 모두의 연인이지만
한편으론 진짜 사랑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애를 자기가 먼저 꼬셔서 시골로 데려가 살아놓고서는..
뻔히 자기를 위해 거짓말하고 떠난 것도 모르고,
또 쫓아가서 사람들 앞에서 얼굴에 돈 뿌리고 망신주고..
심지어 노래도 못해..

후회하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하고 서로 약속할때
안타깝게 병들어 죽고 마는 여주인공이다.
죽으면서 그랬대.
착한 여자 만나 결혼하라고...
죽으면서 왠 남걱정..이냐 싶지만
사실 심오한 이야기다.
나보다 예쁜여자나 나보다 사랑하는 여자 만나지 말고
살면서 죽은 나만 계속 사랑하고 그리워해도 이해해줄 착한 여자랑 결혼하라는거잖아.

실제로 이 오페라의 원작 소설을 쓴 뒤마 2세,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각색한건데
꼭 비올레타같은 사교계 여인과 1년간 사귀다가
신분차이 등.. 아버지의 설득?에 의해 헤어지고 2년간 유학을 갔다 왔더니 여자가 병들어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서 가장 애틋했던건
뒤마 2세는 많은 후회를 했고,
이 소설을 썼고,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늙어 죽을때 유언을 통해
20살에 겨우 일년을 사귀었던 마리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해서 결국 둘이 나란히 묻혀 있다는거다.
평생을 잊지 않았던 사랑이다.

라트라비아타에 녹아있는 사랑이야기는 하나 더 있다.
작곡가 베르디 말이다.
자기 오페라의 여주인공이었던 조세피나와 사회적 비난때문에 몰래 사귄게 13년..
사귄지 13년 같이 산지 11년만에 정식 두번째 부인으로 서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게 너무 억울해서 이 오페라를 올렸다는데..
역시 한이 맺힌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걸작이 되어 심금을 울리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둘을 욕하면서 얼마나 가나보자 했는데 그렇게 죽을때까지 55년을 잘 살았다고 함

요즘에는 볼 수 없는..
두 남자의 사랑과 한이 녹아있는 작품.
작품 소개 끝..










막간을 이용한 분위기 전달용 사진
꽉 채운 관객이 어마어마하다.
흡사 야구경기장 같기도하다.
아저씨들이 바구니에 와인와 콜라 맥주를 가지고 다니면서 팔기도 했다.











여기 연주 하시는 분들
특히 지휘자가 아주 열정적이었다.







다시 공연이 시작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순간 조용해지고
조명도 무대조명만 남겨두고 객석쪽은 다 꺼진다.
정말 긴.. 4시간짜리 공연이다.
음향도 기계장치도 없기 때문에,
막간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무대를 바꾼다.
뚝딱뚝딱

너무 분위기 좋은데..
문제인 사람이 하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가져온 젤리를 다 먹은 아들이
이제 그만 가자고 보챈다.
이럴줄 알았으면 대용량 젤리를 가져올걸..
그래 오래 버텼지?
막 중간에는 나갈 수가 없어서 3막이 끝나길 기다려 밖으로 나왔다.
아쉽게도 비올레타가 죽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12시 다 된 시간인데
길에 사람들이 많다.
저 뒤에 커다란 기사 가면?
다음 공연용인데 이런걸 봤으면 아들이 더 좋아했을텐데..
나만 감성 충만해서 보고 나옴 ㅎ





아들 어르고 달래면서 보느라
중간에 혈압도 떨어지고
겨우 버티고 돌아가는 길
초췌함
그래도 좋았어..


by 니나노 | 2019/10/10 01:40 | 이탈리아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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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sss at 2019/10/10 11:14
나도 베로나 좋았어.....물론 패키지였지만.숙박비가 그나마 저렴해서 그랬었던건지...거기서 일박했었던듯.. 베로나에서 마셨던 모히또가 간절하구나..ㅋㅋ
오페라는 생각도 못했지만......아들은 아직 아기인게 맞나보옹....담에 이모가 젤리 10개 사줘야겠당..^^
Commented by 니나노 at 2019/10/10 13:56
오 베로나에서 모히또를?
나도 거기 호텔에서 한국인 단체 만났었는데
아기는 아직 오페라는 무리야..
Commented by 은이 at 2019/10/10 17:37
오오오.. 저런곳에서 오페라를.... 근데 다 못보시다니... (불끈) ..그냥 울지요 ㅠㅠ
Commented by 니나노 at 2019/10/10 19:06
그러게요.
3막부턴 애 얼르느라 ㅠㅠ 뭘 본건지
그래도 분위기 만끽하고 왔다는데 의의를 두는걸로 ㅎㅎ
Commented by 좀좀이 at 2019/10/11 15:37
아레나는 전투적으로 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인가요 ㅋㅋ 라트라비아타에는 베르디의 사랑이 녹아 있었군요. 사귄지 13년, 같이 산 지 11년만에 정식 부부가 되었다니 베르디가 진짜 오만 감정 다 폭발해서 오페라 썼겠어요 ㅎㅎ
Commented by 니나노 at 2019/10/11 16:31
힙합도 그렇고 역시 음악은 묵은 한이 서려있어야 성공하는가봐요.
사회적 관습때문에 지역 사람들한테 욕 먹어가며 숨어서 연애했다고 해요. ㅠㅠ
근데 그 욕하던 동네 사람들이 나중에 가서 베르디 엄청 유명해지니까 자기 동네 출신이라고 인정해줬다고 함..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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